사서의 직업 가치와 윤리, 그리고 변화하는 자격 요건(미국 동향)
  • 작성부서 국제교류홍보팀
  • 등록일 2022-06-10
  • 조회 3656
글자크기

서관은 늘 정적이고 변화에 둔감한 곳이라는 오해를 받아온 지 오래되었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도서관은 절대적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공공도서관과 연구도서관 모두 이용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개인 학습의 공간적 개념이 가장 먼저 떠 오르고, 도서관 서비스는 책과 자료 대출 이외에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이 드물다. 이에 따라 “도서관 마케팅”이 2000년 대를 시작해서 매우 중요한 도서관 경영 전략으로 등장했고, 실제로 이 노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공간 제공과 자료 대출(필자는 이것을 “도서관의 2-D 서비스” 혹은 “평면적 서비스”라고 부른다)을 넘어서 도서관의 활동적이고 이용자 요구를 먼저 파악해서 제공하는 “3-D 서비스” 혹은 “입체적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서에 대한 이미지 변화였다. 사서가 도서관 서비스의 핵심 위치에 서서, 다양하고 매우 전문적인 학습과 문화 교육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별히 아시아 지역의 대학도서관계에서는 “주제 사서”의 바람이 수년간 강하게 불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 간은 변화하는 도서관의 사회적 그리고 학술적 위치에 걸맞은 사서의 역할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최근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사서와 정보 종사자를 양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사서 양성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서의 직업 가치와 윤리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사서의 가치와 윤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미국전문도서관협회(Special Libraries Association)와 같은 여러 협회들은 매년 콘퍼런스와 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연구해 왔고, 그 과정에서 특별히 부각된 사서의 윤리적 핵심 가치들이 있었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접근성(Accessibility), 이 네 가지 가치가 바로 그것인데, 영어의 앞 글자를 따서 흔히 DEIA라고 부른다. 많은 연구와 토론 끝에 앞으로 사서에게 요구되는 핵심적 가치가 바로 DEIA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이 네 가지는 윤리적 가치를 넘어서 앞으로 사서의 사회적 위치와 직업적 기능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사서가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직업윤리이자 가치로 DEIA가 떠오른 이유는 급격한 기술 발달의 혜택을 누리는 층과 그렇지 못한 층들의 차이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온라인 환경에 접근이 어려운 계층은 자녀의 원거리 학습과 팬데믹 대처를 위한 정보 수집, 그리고 이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 사회가 인종 간의 형평성에서 시작하여 성별, 혼인 여부, 신체장애, 종교, 정치적 이념 등의 각종 차별을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이 심화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관심과 노력에 도서관과 사서가 앞장서야만 한다는 직업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감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높다고 하겠다. 사서가 DEIA에 앞장서 정보와 관련한 평등과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는 직업적 의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미국에서 고등교육과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알려진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지에서 발표한 “도서관의 미래(Future of the Libraries)”라는 보고서는 미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하는 최전방에 도서관 사서들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헌정보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라 불리는 「Library Trends」의 책임 편집자는 앞으로 2년간 DEIA와 관련한 논문 게재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편집팀을 재편하기도 했다. 정보사회가 가지고 온 사회적 변화의 최전선에 사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엄청난 기회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DEIA는 제4차 산업혁명(미국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표현이 더 자주 쓰인다)의 테마와도 부합한다. 대중의 편의와 대량생산에 초점을 두었던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달리, 제4차 산업혁명은 개인의 요구와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DEIA로 대표되는 각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배경을 가진 개인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어떤 계층도 정보 수집과 분석에서 제외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정보 접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용이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의 도서관에서도 지난 2년간 DEIA에 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대학도서관으로는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와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장서량을 자랑하는데, 약 400명의 사서와 행정 직원, 그리고 근로장학생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규모 조직이다. 2021년의 조직 개편을 통해 DEIA 부서가 새로이 신설되었고, 부서 담당자는 부관장 대우를 받으며 도서관 이용자와 직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DEIA 정책을 만들고 감시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이것은 DEIA가 현재 미국 대학도서관에서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주제이자 기회로 자리매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사서의 자격 요건과 변화하는 근무 환경

DEIA에 기반한 직업윤리를 갖춘 새로운 사서의 자격 요건도 지난 몇 년간 활발하게 토의되어 왔다. 사서는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이용자의 잠재적 필요까지 파악하여 미리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는 기존의 사서 교육에 큰 변화를 가지고 왔다.

대학도서관을 예로 들자면, 미국 대학의 전반을 휩쓸고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가 사서의 전문 분야나 직책에 상관없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제 사서 중심의 구조에서는 각 사서의 분야별 전문 지식만이 중요했지만, 이제 데이터 사이언스와 관련한 초보적 지식은 모든 사서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인문학 담당 사서가 디지털 인문학의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모든 인문학 분야(역사, 철학, 문학, 종교, 예술 분야 포함) 사서를 선발할 때에 디지털 인문학의 기본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프로그래밍의 기본은 물론이고,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과 통계 분석 등의 배경을 가진 인문학 분야 사서를 보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 이들은 단단한 기술적 배경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향한 고정관념을 깨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문 교육에 큰 역할을 감당한다.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 바로 이들이 있다고 하겠다.

사서의 자격 요건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사서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의 교육 과정에도 큰 변화가 있어 왔다.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사서 핵심 교육 과정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교육 프로그램에 새로이 신설되는 과정과 과목은 예전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프로그래밍, 통계 분석은 예전부터 필수 과목들로 분류되어 있었고, 이제 인공지능과 데이터 비쥬얼리제이션(Data Visualization), 데이터 스토리텔링 (Data Storytelling) 등이 사서 교육 과정 중에서 가장 수강생이 많고 또 그들의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문 분야에 상관없이, 이제 새로운 도서관 서비스는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기초 이상의 이해와 실력이 요구되는 때라고 하겠다.

한편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소위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 미국 사서 양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동향은 사실 거의 모든 직종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는데, 사서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사서를 향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깨는데 소프트 스킬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의 사서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사서의 발표 능력, 프로젝트 관리 능력,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이 필수 조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필수 조건에 포함된다는 것은, 아무리 다른 능력이나 경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필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지원자들에게는 채용의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들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데 (“demonstrated ability”라고 한다), 이것은 사서 교육 과정 속이나 다른 실제 경험을 통해 이력서와 인터뷰 과정에서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만큼 사서의 역할이 복잡해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필자가 근무하는 일리노이대학교의 사서 교육 과정에서도 이러한 소프트 스킬 개발에 도움을 주기 위한 과목과 실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경험 학습(Experiential Learning)”이 고등교육에 핵심가치로 부상하고 있는데, 여러 대학들과 교육기관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경험 학습”을 통해 사서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현장에 투입되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도서관 서비스에 관한 학습을 넘어서는 것이다. 도서관이 평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가운데, 도서관 혁신의 아이디어 창출과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발표 능력, 팀 관리와 분석적 사고 능력을 현장에서 개발하게 된다. 일례로, 2022년 5월 현재 다섯 명의 사서 지망생들이 한 팀을 만들어 미국 중서부의 대학도서관들을 상대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새로운 도서관 운영 전략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년간 축적된 각종 데이터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마케팅 캠페인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가설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여러 도서관 운영진으로부터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사진2. 일리노이 대학교의 정보과학대학-사서 지망생들을 위한 학위 프로그램 운영

미국에서 사서는 이렇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직업이 또 있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 사서들의 역할과 사회적 중요성은 늘 저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사서 교육의 동향과 현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보면,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모습의 사서가 등장하고 있다는 확신도 가지게 된다. 앞서 언급한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서는 미래의 사서를 “위대한 균형자(Great Equalizer)”로 불렀다. 전 세계가 정보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계층 간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과 의무가 바로 도서관 사서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거짓 정보와 편향된 정보, 제한된 정보 기술 등으로 우리 사회가 더욱 극단과 불평등으로 몰아쳐진 것이 팬데믹의 황폐한 결과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닐까? 지금은 도서관계 종사자들이 위대한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 사서의 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며, 현재와 미래의 사서는 어떤 윤리적 가치와 전문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고심해야 하는 도전의 시점임이 분명하다.


글_송유성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정보과학대학 교수

담당부서 : 국제교류홍보팀 (02-590-0797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