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서관의 미래 ①
  • 작성부서 국제교류홍보팀
  • 등록일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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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중앙도서관은 지난 10월 27일,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77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사서, 데이터, 미래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도서관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기획되었는데,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정보대학원의 R. 데이비드 랭크스(R. David Lankes) 교수가 ‘한국 도서관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도서관이 지향해 나가야 할 도서관 모델에 대해 발표했다. 랭크스 교수는 『The New Librarianship Field Guide』, 『The Atlas of New Librarianship』 등 사서들의 지침서를 다수 펴냈으며, 2021년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ALA)가 정보사서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인 ‘이사도어 길버트 머지(Isadore Gilbert Mudge Award)’ 상을 수상했다.


사진1.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77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데이비드 R. 랭크스 교수 발표 모습 (출처: 임진아)

월드라이브러리에서는 콘퍼런스 강연 중 랭크스 교수의 발표 전문을 발췌하여 번역하고 이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하는 발표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강연할 기회를 주신 국립중앙도서관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서관의 미래를 주제로 오늘 강연을 요청 받았습니다. 여러분께서 놀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동안 연구를 하고 전 세계 사서 여러분과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도서관의 미래라는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 동네 또는 여러 대학교를 방문해서 서가를 살펴보고 공동보존서고에서 정보를 찾는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암울한 미래가 예측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서, 시민, 학생, 학자와 그들이 의지하는 지도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의 전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보시다시피, 여러 도서관에 펼쳐질 하나의 미래라는 것은 없고 도서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야외 정원처럼 만들어져서 웰빙과 관련이 있는 주변 정보를 제공하는 도서관이 머지않아 생겨날 수도 있고, 각종 공구와 3D 프린터가 있는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 형태의 도서관도 있을 수 있고, 갤러리나 가상 매체 저장소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도서관은 이런 모든 것이 복합된 형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서가와 책으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도서관을 정의하는 속성은 크게 2가지 즉, 도서관이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커뮤니티(community)의 특징을 반영하고, 도서관 직원들은 해외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얻어 현지 환경에 맞게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서관의 비전은 공상과학물이나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기술에 근거하여 예측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만, 사실 이미 진행 중인 변화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도서관의 미래는 1세기도 넘게 효율성에 맹목적으로 집중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기존의 정보 패러다임이 초래한 기계적 중립(false neutrality)과 기술결정론이 지속될 수 없다는 인식이 점차 커짐에 따라 도서관에 생겨나는 필연적인 변화입니다.

이러한 미래, 즉 우리의 미래는 새로운 사서직(librarianship)의 개념이 많이 확산 및 수용되면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새로운 사서직이라는 것은 커뮤니티와 도서관 이용자가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커뮤니티가 더 현명한 결정 내릴 수 있도록 확실히 참여하여 돕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서직의 개념은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권위주의, 기후 위기, 잘못된 정보의 확산, 세계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위협에 직면하여 등장한 단체 및 행동에 따라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참여적이며 커뮤니티와 연계된 새로운 사서직의 개념은 우리가 사서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하는 모든 일과 우리의 직업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열람 업무와 정리 업무의 구분 등과 같이 시대에 뒤처지는 개념을 담은 커리큘럼을 그대로 전수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래의 사서들을 교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서 자격 인증 방식을 발굴하여 어느 지역에서나 그 정당성이 높게 인식되도록 해야 합니다.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혁신 및 모범사례를 따르거나 응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양한 특징이 있는 이 세상에서 도서관 관련 네트워크와 단체들은 표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을 확산시키고 (사서직을 위한 가상 메이커스페이스 등의) 네트워크 관련 멘토링을 제공하여 더 나은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주기능인 플랫폼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 가지 설명을 드리기 전에, 먼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세계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인근 지역의 도서관 간에도 다른 특성을 보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공적이고 다양하며 전망이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서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사서(사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거나, 사서라는 직책에 있거나, 마음만은 사서인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여)를 전문 지식을 갖추고 신임을 얻으며 양심적인 지성인으로서 지역사회의 균열을 봉합할 의무가 있는 직업으로 봐야 합니다. 사서는 구시대적 기준으로 공평한 것이 아닌,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과 평등, 다양성 및 포용 추구를 기반으로 검열과 금서 지정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다 함께 사서직의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장서나 건물 또는 메타데이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 좋은 아이디어와 사람을 연결하고 통합함으로써 커뮤니티(마을, 국가, 학교, 대학)의 안녕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제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몇 개의 미래 시나리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정원입니다.

산 마테오 델리 아르메니(San Matteo degli Armeni) 시립 도서관은 이탈리아 페루자의 고대 성벽 바깥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대 유적 안에 있는 공공도서관으로, 단정한 실내 공간이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실내 공간은 평화, 비폭력, 인권, 문화 및 종교 간의 대화, 윤리적이고 공정한 거래에 관한 장서 연구를 수행할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공공도서관의 진가는 바로 정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17세기 유물인 구조물, 연못, 동상이 있는 5,000 제곱미터의 정원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정원 안에는 지역주민들이 채소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인권 운동가들을 추모하기 위한 유엔(U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삼나무숲 옆에서 주민들이 결혼식을 하기도 합니다.

무선 인터넷이 제공되는 야외 공간에서 지역 대학생들이 공부하거나 쉬기도 합니다. 지역사회 봉사자들이 채소와 화초를 가꾸기도 하고, 러시아정교회에서 관리하는 오래된 성당도 이곳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곳이 도서관입니다. 페루자 시민의 자금으로 시민을 위하여 운영되는 도서관입니다. 책이 있기 때문에 도서관인 것이 아니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도서관인 것이 아닙니다. 페루자 시민들이 더 높은 도덕성과 공정성을 갖춘 커뮤니티로 거듭나고자 하도록 돕는 가브리엘레 드 베리스(Gabriele De Veris) 사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이 된 겁니다.

야외공간을 통해 커뮤니티가 원하는 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가브리엘레 드 베리스 외에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그린즈버러 캠퍼스의 노아 렌스트라(Noah Lenstra) 박사는 야외공간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웰빙과 건강을 증진하는 사례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뉴질랜드의 셀윈을 예로 제시합니다.

"테 아라 아테아(Te Ara Ātea)의 내부와 외부는 모두 탐험과 놀이로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야외 공간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거나 채소를 키우는 법을 배우고 싶으신가요? 아늑하고 조용한 곳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 건 어떨까요? 감각적인 정원에서 가족, 친구,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그냥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감각적인 공간과 정원이 오감을 자극하고, 이곳에는 퍼걸러(pergola), 먹을 채소들이 심겨 있는 텃밭, 야외 악기와 물도 있고 여러 색깔이 칠해져 있습니다.
인근 9개교에서 온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수백 명의 학생들이 아름답고 특색 있는 기둥과 모자이크 타일 장식을 브레인스토밍, 스케치, 디자인하고, 그려내고 색을 칠해서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풍경, 식물, 새, 환경과 각 학교의 특성을 상징하는 장식으로 기둥이 생동감 넘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1

캐나다 궬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등지에서는 사서들이 씨앗도서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국 뉴욕 중심부에서는 땅을 임대하여 지역 주민이 텃밭을 가꿀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걸스카우트가 식물의 수분(pollinate)을 위해서 벌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남는 식재료는 가을에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파머스마켓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하거나 지역 식품저장소(food pantries)에 기부합니다.

이런 도서관은 씨앗에 MARC 레코드가 있다거나 듀이십진분류기호로 텃밭을 분류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 구성원의 삶에 지식과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운영되는 것입니다. 벌이나 씨앗 또는 책을 통해서 모두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사서 및 도서관 직원의 노력으로 커뮤니티의 삶이 개선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책이 저자의 생각을 배우거나 전달 또는 데이터베이스에 정보를 공급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교육과 담론화를 위해서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담론이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필라델피아에서는 의학 데이터베이스나 건강에 관한 책이 아니라 조리실습 교육을 위한 공간을 시내 도서관 한 가운데에 마련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곳 시내는 흔히 음식의 사막이라고 부릅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한 음식을 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식료품점보다는 편의점이 많고, 채소보단 값싼 정크푸드를 구하기가 더 쉽습니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조리실습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민간단체나 시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로 시내에 건강한 재료가 제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요리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당근이나 토마토 같은 재료만 제공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쿠킹 클래스를 개설했습니다. 이후,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을 통해 사서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필라델피아 도심은 세계 여느 도심과 같이 이민자가 많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합니다. 필라델피아 도서관 직원들은 도심의 음식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고, 다양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민자 등 다양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조리 공간을 사용하고 그들이 태어난 지역 또는 그 가족의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도서관에 가서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스스로가 도시에 어떠한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전 세계 사서들은 전 세계와 지역 주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옥상정원과 한가로운 안뜰이 주변 산책로와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등 오늘날의 도서관은 지식과 커뮤니티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차를 몰고 3시간 정도 가다 보면 나오는 스파턴버그 공공도서관에는 해방된 노예들이 손으로 짜서 북부 연방군에게 증정했던 미국 국기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리치랜드 공공도서관에 가면 “산책로를 따라 한 걸음씩 걸어 나가며 이야기를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는" 스토리워크(StoryWalk)를 볼 수 있고, 찰스톤 카운티 공공도서관의 교외 분관에서는 신선한 농산물을 무료로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3시간 정도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커뮤니티를 위해서 다 같은 방식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훌륭한 도서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서 이런 사례들을 듣고 어떻게 그런 서비스가 학자, 변호사, 국회의원 또는 그 밖의 도서관 이용자 등과 같은 다양한 단체의 수요를 맞출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물리학 교수들을 위해서 대학교에 정원을 지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아카이브 연구에 몰두하는 역사학자들을 위해서 신선한 과일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걸까요?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항상 커뮤니티마다 필요로 하는 도서관 서비스가 다르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가 사용할 용어를 좀 명확히 정의한 다음에 더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제가 말하는 커뮤니티란 단순히 해당 지역의 주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교도 교수, 학생, 교직원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입니다. 초등학교도 아이들과 선생님의 커뮤니티고 로펌도 변호사, 사무보조원, 고객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입니다. 커뮤니티는 (거주지, 일, 학업 등과 같은) 기지(known)의 변수와 땅, 돈, 권한 등과 같은 희소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에 따라 결합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커뮤니티는 지역을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국가 정부 및 경제를 기준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속한 텍사스 대학교 커뮤니티도 대학교 구성원을 기준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시간, 수업료 및 공간 사용 체계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도서관 서비스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사서와 그 밖의 도서관 직원이 활용하는 모든 것은 서비스 이용자가 더 현명해지고 많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장서도 단순히 책이나 문서를 모아둔 것이 아닌, 서비스입니다. 정리, 서가 배열, 보호, 대출되는 대상이고 관리하는 사람이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면서 제공하는 것이므로 서비스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건물도 서비스에 해당합니다. 건물의 개방 시간, 이용 가능 좌석 수, 소음 등을 모두 관리하는 것이므로 서비스가 됩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아마 제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인 "나쁜 도서관은 장서만 수집하고, 좋은 도서관은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훌륭한 도서관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도서관이 장서를 수집하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사서라는 직업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장서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활용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수집만 한다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용성을 고려하고,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서비스로 제공된다는 관점의 필요성을 아는 도서관은 좋은 도서관입니다. 사서가 하는 모든 일이 커뮤니티의 안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장서 중심과 서비스 중심의 2가지 접근법 모두 그 자체만으로는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도서관 정원이라는 것도 단순히 식물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그럴싸한 서비스도 아닙니다. 도서관 정원은 커뮤니티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서관 정원은 커뮤니티 전체가 건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기관 및 개인이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는 지와 결부되지 않거나 도서관 사서가 학생, 학자, 기업가, 부모, 의회 의원과 함께 더 현명하고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움직임의 일환이 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 정원을 도서관이 갖추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문서 아카이브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합니다. 또는 그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메이커스페이스나 영국에 있는 스토리하우스(Storyhouse)와 같은 곳을 만들어야 합니다.

"체스터에 있는 스토리하우스는 도서관, 극장, 영화관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영국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문화공간 중 하나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예술 공간 중 하나로서, 매년 1만 명 이상이 이곳을 방문합니다. 스토리하우스 안에 위치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 도서관은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과 사서들의 협력으로 매일 밤 11시까지 개관하여 영국 공공도서관 중 최장 이용 시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1년에 2천 개가 넘는 수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2

기존에 여러분들은 아마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신문, 서적 등을 수집하고 제공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문화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단순히 기업을 지원했던 기존 방식을 넘어서는, 더 선제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업가정신을 갖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영국 국립도서관(the British Library)처럼 비즈니스 & IP센터를 갖춘 도서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센터에서는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 누구나 디지털 자료를 열람 및 출력할 수 있고, 해당 커뮤니티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에 관하여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담당 사서들이 사업개발 관련 교육을 받기도 했었고, 정기적으로 네트워킹 행사나 강연을 개최하기도 합니다. 성공한 사업가와 신규 창업자를 연결하는 멘토 네트워킹 프로그램과 공간 대여를 지원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합니다.

모든 도서관이 똑같지 않다는 생각은 사실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닙니다.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과 그 수요 및 사람을 중심으로 도서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각 기관의 종류에 따라(공공, 대학, 학교, 국립, 전문 등으로) 도서관을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시각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환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대학도서관의 경우, 일각에서는 앞으로 희귀 자료 위주로 운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도서관들은 권위 있는 논문, 특정 시대나 사건 중심의 희귀 자료를 구하며 차별화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경우 영화, 정치인, 만화책에 대한 놀라운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편,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텍사스대학교 보건과학센터 도서관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소량의 희귀 의학 자료를 제외한 모든 물리적 매체를 없앴습니다. 규모를 축소했다거나 폐관한 것이 아니라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바로 서가가 있었던 공간에 학생들이 인턴이나 레지던트 지원 시 활용할 수 있는 화상회의 설비를 설치했습니다. 코로나19 전에 의대생들은 취업을 위해 병원에 직접 방문하여 대면 면접을 봐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대개 본인의 능력이나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행기와 호텔에 드는 비용 때문에 여러 곳에 지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10~20곳에 지원하여 도서관에서 화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해 면접을 볼 수가 있게 되었고, 이로써 의사 지망생들에게 더 공평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왜 이런 역할을 도서관이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상회의 설비 설치는 대학교 IT부서에서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는 물론 맞는 말입니다. 단순히 좋은 카메라를 갖춘 회의실을 제공하는 것에 그쳤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사서들은 단순히 회의실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동안 더 많은 것을 학습하고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면접 준비와 배경지식 공부를 도우며, 학생들이 더 많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졸업생과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그렇게 텅 비었던 도서관은 이제 학생, 교수진 모두와 함께 의학계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교류하는 직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이런 곳이 도서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까 말했던 전환점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샌안토니오 보건과학센터 도서관의 행보는 노숙자 취업 지원을 위해 노력 중인 다른 도시의 도서관들과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화상회의 공간과 배경지식 검색을 지원하는 공공도서관들이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단정한 재킷이나 넥타이를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틸뷔르흐의 로칼(LocHAL) 공공도서관은 지역 커뮤니티에 관한 구전 역사 자료를 구축하고자 하는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틸뷔르흐에서는 국가 철도 산업의 변화로 인하여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열차 정비 창고에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개관을 준비하면서 사서들은 착공 전에 지역 주민을 초청하여 창고를 방문하고 사용해보도록 했습니다. 주변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그 지역의 전성기에 관한 역사적 사진과 사실들을 전시했습니다. 대형스크린을 통해서 단순히 정보 제공만 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그곳에서 일했던 직원과 정비공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의 일터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일을 했으며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지역 공공도서관이 완공되었을 즈음, 단순히 커뮤니티를 위해 지어진 도서관이 아니라 커뮤니티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사실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미래에 관한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도서관이 유지해왔던 운영이나 직원 채용 방식에 관해서 지역주민들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날 전 세계 도서관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도서관들이 노숙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 예방 교육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수한 대학도서관들은 데이터과학자를 고용하기도 하고, 과거의 학술 문헌을 보존함과 동시에 연구 및 교육자료에 대한 오픈액세스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과 같이 위대한 문화유산 중심기관들은 이제 과거로부터 계승된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가도 문화유산에 포함되는 생각으로 고문헌 전문가, 보존전문가뿐만 아니라 제작자(makers), 청년 전문가들도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서직이 이렇게 복잡해진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복잡해졌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 우리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개성, 다양성 및 가치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서관학계에서 멜빌 듀이(Melvil Dewey) 등이 주장한 산업생산 및 효율성 중심의 오래된 보편론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사회, 커뮤니티 또는 인간의 풍요로움은 글로써 가장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는 오래된 문서관리 중심적 접근법과 글은 반드시 작가가 의도한 대로만 이해하여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버린다"라는 것을 4천 년의 역사를 완전히 버리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그런 것들이 의미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4천 년의 역사에 걸쳐 도서관이 존재한 이유는 우리가 주기적으로 스스로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돌아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후 효과가 있었던 것은 유지하되 효과가 없었던 것을 중심으로 변혁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입니다.

농부를 생각해보면, 자꾸 농작물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작물 경작은 1만년이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필수적인 업종입니다. 오늘날의 농부들은 수 세기 전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수천 년 전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도 합니다. 농부는 콤바인, 합성 질산비료, 컴퓨터로 조작 가능한 GPS 기반 관개 시스템을 통해 더 위대한 직종으로 진화했고, 지속적인 인구성장에 따른 수요를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식에 관하여 농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류의 생각을 모으고, 관리하고, 전파하는 방법에 관하여 진전을 보여왔기는 했지만, 아직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떻게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를 더 현명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과제에 직면해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도서관이 단순히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시면, 그 건물이 단순히 많은 도서를 보관하던 장소가 아니라 훗날 박물관(museum)의 어원인 여신 뮤즈(the muses)를 모시던 장소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이 모여 함께 일하면서 왕의 자문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이 생산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지면서 도서관이 시, 물리학, 수학 발전의 장으로 성장했고, 여기 한국에서도 13세기 인쇄술의 발전과 15세기 한글 창제를 토대로 도서관이 문해력 성장에 기여한 사례도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본 글은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77주년 기념 콘퍼런스 주제발표를 번역·편집하였습니다.


글_R. 데이비드 랭크스(R. David Lankes)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 정보대학교 교수

담당부서 : 국제교류홍보팀 (02-590-0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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