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0nz a2200000n 4500 001 KSH2000035329 005 20021110063640 008 001023 n azknn|abn |a a|a | 150 ▼a흉노[匈奴]▲ 450 ▼wr▼i영어▼aHun▲ 550 ▼wg▼a5호 16국[五胡十六國]▲ 550 ▼wh▼a남흉노[南匈奴]▲ 550 ▼wh▼a북흉노[北匈奴]▲ 550 ▼a북량 왕조(5호16국)[北량王朝]▲ 550 ▼a전조 왕조(5호16국)[前趙王朝]▲ 550 ▼a하 왕조(5호16국)[夏王朝]▲ 550 ▼a훈족[--族]▲ 550 ▼a흉노족[匈奴族]▲ 551 ▼wh▼a북량(국명)[北凉]▲ 551 ▼wh▼a전조(국명)(前趙]▲ 551 ▼wh▼a하(국명)[夏]▲ 680 ▼i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 ·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기마민족(遊牧騎馬民族) 및 그들이 형성한 국가의 명칭. 주대(周代)에 중국의 북변을 위협하였던 험윤() ·훈육() 등의 후예라고 하지만 확증은 없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하였을 무렵(BC 221) 흉노 연제(攣:虛連題) 씨족의 족장(族長) 두만(頭曼)은 몽골고원의 제족연합(諸族聯合)에 일단성공하였으나, 그 아들 묵돌[冒頓:?∼BC 174]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선우[單于:북아시아의 유목국가의 군주를 가한(可汗)이라고 칭하기 이전에 사용한 칭호]라 칭하였다.묵돌은 남만주의 동호(東湖), 북방의 정령(丁令), 예니세이강(江) 상류의 키르기스를 정복하고, 서방의 월지[月氏]를 격파하여, 북아시아 최초의 유목국가를 세우고, 이어 산시성[山西省] 북부에 침입하였다.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은 북진하여 이를 요격(邀擊)하였으나, 다퉁[大同] 부근에서 포위되어 간신히 탈출한 다음, 한황실(漢皇室)의 딸을 선우에게 주어 처를 삼게 하고, 매년 많은 견직물 ·술 ·쌀 등을 흉노에게 보낼 것을 조건으로 화의(和議)를 맺었다(BC 198). 그 뒤 흉노는 오손(烏孫)이나 동(東)투르키스탄의 오아시스 제국(諸國)을 지배하였는데, 그 결과 흉노의 지배권은 동(東)은 러허[熱河]에서부터 서는 동(東)투르키스탄까지, 북은 예니세이강(江) 상류에서부터 남은 오르도스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흉노의 주요한 경제적 기지는 동(東)투르키스탄에 있었고, 군수기지는 내(內)몽골 ·오르도스에 있었으며, 전자(前者)로부터는 그 물산(物産)과 교통 ·통상보호세(保護稅)를 거두었고, 후자에서는 스키트 ·시베리아계(系)의 청동기, 특히 무기류(이른바 綏遠 또는 오르도스 靑銅器)를 제작하였다. 이리하여 흉노는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한나라 무제(武帝:재위 BC 141∼BC 87)는 자주 흉노에게 원정군을 보냄과 동시에 이를 동서로부터 협격(狹擊)하고자 장건(張騫)을 월지에 파견하였다(BC 139∼BC 126). 이와 같은 무제의 정책으로 흉노는 외(外)몽골로 도피하고, 동투르키스탄은 한나라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또 정령 ·선비(鮮卑) 등의 예속제족(隸屬諸族)이 독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