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0nz a2200000n 4500 001 KSH2004018133 005 20050514230644 008 040531 n azknn|abn |a a|a | 151 ▼a밀라노(지명)[Milano]▲ 451 ▼wr▼i영어▼aMilan▲ 451 ▼wr▼i이태리어▼aMilano▲ 550 ▼a밀라노 대성당[--大聖堂]▲ 551 ▼wg▼a롬바르디아주[--州]▲ 551 ▼a두오모 광장[--廣場] ▲ 680 ▼i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州都). 인구는 130만 1551명(2000)이다. 포강의 지류인 티치노·아다두 하천 사이의 비옥한 평야부에 자리한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발달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다. 켈트인의 취락에서 기원하여 로마시대에는 메디올라눔이라고 불리는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374년에 성(聖)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부터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성(聖)암브로시우스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밀라노의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5~6세기에는 훈족·고트족의 침입으로 시가지가 파괴되고, 다시 랑고바르드족의 점령하에 들기도 했다. 샤를마뉴의 치하(治下)에 들게 된 무렵부터 밀라노 대주교의 권력이 강대해지고, 따라서 전란을 피하여 성벽으로 둘러싸인 밀라노로 몰려드는 인구도 증대하여, 11세기에는 롬바르디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163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시가지가 파괴되었으나, 밀라노는 롬바르디아동맹에 가담하여, 1176년 레냐노 싸움에서 황제의 군대를 무찔렀다.그 뒤, 롬바르디아의 도시들은 다시 서로 반목하게 되고, 또 밀라노에서도 여러 세력이 분열하여 기벨린당(黨)과 겔프당의 분쟁에 휩쓸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밀라노에서는 직물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또 근교의 농촌에서는 토지개량이 진척되어, 롬바르디아에 있어서의 밀라노의 경제력은 다른 도시들을 크게 압도하였다. 1277년 귀족세력의 지지를 받은 비스콘티가(家)가 밀라노의 영주가 되어, 그 후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1447년 그 집안의 남계후손(男系後孫)이 끊길 때까지 밀라노에 군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