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는 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 일상 속 커뮤니티 공간
  • 작성부서 국제교류홍보팀
  • 등록일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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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조은정

라이브러리 티티섬 관장


‘경험’하는 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티티섬)은 도서문화재단 씨앗(재단)이 만들고 운영하는 ‘청소년 중심 공공도서관’이다. 여느 공공도서관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청소년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가기 위해 공간 면적의 절반을 청소년 전용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단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확장하며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리고 도서관이 이러한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공공의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새로운 공간, 콘텐츠, 운영의 상을 제안하고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도서관이 청소년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가 되려면, 기존의 역할, 즉 “국민에게 필요한 도서관자료를 수집·정리·보존·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교양습득·학습활동· 조사연구·평생학습·독서문화진흥 등에 기여하는 시설”1)에서 나아가, 책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이 일어나는 곳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자유롭게 탐색해 보고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티티섬의 미션을 ‘경험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정의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티티섬의 공간, 콘텐츠, 운영의 원칙은 이러한 미션에서 출발한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리플릿 층별 안내(출처: 조은정)

그림 1. 라이브러리 티티섬 리플릿 층별 안내(출처: 조은정)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일상의 공간

청소년들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 도서관, 그러한 도서관이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먼저 청소년들이 이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와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티티섬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접근성을 높이고 접점을 넓히기 위한 3가지 시도를 했다. 첫 번째는 위치이다. 티티섬은 초·중·고등학교 9개가 모여있는 경기도 성남 지역의 상가 건물 9~12층에 자리 잡았다. 청소년을 적극적으로 만나려면 도서관이 청소년들과 가까운 곳, 청소년들의 일상 동선 위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혹은 학원 오고 가는 길에 잠시라도 부담 없이 들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위치(출처: 조은정)

그림 2. 라이브러리 티티섬 위치(출처: 조은정)

두 번째는 운영 시간이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이 방과 후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화장실, 열려 있는 와이파이, 누구나 회원가입 없이도 빌릴 수 있는 핸드폰 충전기 같은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깨알 같은 요소에도 신경을 썼다. 일단 청소년들이 티티섬으로 와 우리와 만나는 게 중요했다. 우리가 서로 만나야 비로소 티티섬이, 도서관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공간인지를 알려줄 수가 있다.

자신의 욕구에서 출발한 경험

‘도서관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경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재단은 ‘청소년 각자가 하고 싶은 것, 더 잘하고 싶은 것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것’으로 꽉 차 있는 일상을 사는 청소년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각자의 욕구에서 출발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집이나 학교가 아닌 도서관과 같은 제3의 공간에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티티섬에 다양한 탐색과 시도를 할 수 있는 인프라(공간, 콘텐츠, 사람)를 마련하고, ‘공간의 기능은 있되, 활용 방식은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정한다’를 운영 원칙 중 하나로 정한 이유도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이용자의 ‘하고 싶은 마음(욕구)’에서 출발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티티랩(출처: 조은정)

사진 1. 티티랩(출처: 조은정)

덕분에 티티섬 안에서는 이용자가 스스로 시도하는 다양한 풍경이 관찰된다. 텃밭에서 물을 주고 구근을 심는 이용자가 있는 한편, 텃밭을 배경으로 틱톡(TikTok)이나 숏츠(Youtube Shorts)를 촬영하는 이용자도 있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할 수 있는 랩에서는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작업도 일어나지만, 동시에 만들어진 옷들로 패션쇼를 열어보는 작업도 일어난다. 공간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활용하는 것이다.

사진 2. 티티라운지(출처: 조은정)

사진 2. 티티라운지(출처: 조은정)

한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모습은 제각각이 된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누군가는 시험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악기 연주를 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한다.

모두의 테이블(출처: 조은정)

사진 3-5. 모두의 테이블(출처: 조은정)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용자라도 그 행동을 하는 이유와 욕구가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티티섬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이용자의 경우에도 친구와 나누어 먹고 싶어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 요리를 만들고 싶어서, 신기한 재료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요리를 한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나 정보도 다르다. 요리를 해서 친구와 나누어 먹고 싶은 이용자는 대용량 요리를 잘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한편, 작품성 있는 요리가 목적인 이용자는 요리 전문 서적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신기한 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요리를 하게 된 이용자는 재료와 좀 더 다양한 요리 정보가 담긴 책에 관심을 보인다.

이용자의 요구(모습)와 이용자의 욕구(출처: 조은정)

그림 3. 이용자의 요구(모습)와 이용자의 욕구(출처: 조은정)

먼저 발견하고, 제안하고, 촉진하는 운영자

이용자의 욕구에 따른 유형 구분(출처: 조은정)

그림 4. 이용자의 욕구에 따른 유형 구분(출처: 조은정)

다만 ‘청소년 각자가 하고 싶은 것, 더 잘하고 싶은 것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모습에도 미세한 차이들이 보인다. 우선,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티티섬 운영자의 역할은 이용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형태의 자료와 정보를 제시하는 동시에, 다음부터는 스스로도 자료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이용자라면 어떨까?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당장은 없고 도무지 모르겠는 경우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천천히 하나하나 탐색하고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운영자가 곁에서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반면 겉으로 표현하기로는 “하고 싶은 게 없다, 잘 모르겠다”이지만 실은 이용자 마음 깊숙이 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는 경우들도 많다. 그리고 운영자의 역량은 이렇게 이용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욕구, 혹은 비언어적으로만 표현했던 욕구, 나아가 이용자 스스로도 미처 인지 못하고 있던 욕구를 먼저 읽어내주는 데서 빛을 발한다. 우리가 한 편의 글을 읽을 때 글 속에 담긴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문해력이 필요하듯이, 운영자가 이용자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에도 이른바 ‘문해력’이 필요한 것이다. 기타 곁을 계속 맴돌면서도 막상 한번 쳐보라고 권하면 “저 기타 관심 없어요”라며 거절하는 이용자의 마음에는 ‘잘하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기타를 쳐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길 꺼린다. 핸드폰 게임만 주야장천 하는 이용자는 정말로 게임이 하루 종일 재미있을까? 잘 들여다보면 따분하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하는 수 없이 게임만 할 때도 많다. 이럴 때 신나게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슬쩍 제안하면, 처음엔 곁눈질만 하다가도 스리슬쩍 빠져들어 어느새 핸드폰을 내팽개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티티섬에서는 핸드폰 분실물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듯 이용자의 마음속 ‘진짜 욕구’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읽어내고, 만약 두려움이 장벽이라면 두려움을 낮추는 방법을, 색다른 제안이 필요해 보인다면 무엇을 어떻게 적절하게 제안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운영자의 문해력이다.

패턴을 읽고, 기획하고, 기록하기

한편 티티섬 운영자들은 개별 이용자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탐색과 시도를 돕기도 하지만, 이용자의 전반적인 이용패턴을 분석해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한다. 5월이 되면 학교 운동회를 준비하기 위해 티티섬을 방문하는 이용자가 늘어난다. 더 눈에 잘 띄는 응원도구, 플래카드 등을 만들기 위해 묘한 경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운영자들이 폰트, 대비되는 색상 등의 정보가 담긴 책과 미디어 자료를 배치해 두었다. 그 결과 이용자들이 만든 플래카드의 형태가 더 다양해졌고, 관련 책을 스스로 찾아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운영자들은 이용자들이 티티섬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콘텐츠를 접하는 방식을 그에 맞춰 빠르게 수정·보완하고, 이후의 상황을 다시 관찰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수정·보완 과정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운영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축적하는 업무도 함께 수행한다. 이렇듯 유연하게 변화하고 정확하게 기록·공유하는 역량은 다양한 사람이 오가고 끊임없이 변화와 변수가 발생하는 공공도서관 운영자로서 상황을 조율하고, 그러한 조율의 경험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그치지 않도록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느슨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일상 속 커뮤니티

그렇게 청소년들이 점점 티티섬에서 ‘경험’을 하는 모습들이 일상이 되었고, 각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감과 레퍼런스가 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중학생 이용자에게 수학 문제를 알려주기도 하고, 기타를 연주할 줄 아는 중학생 이용자가 고등학생 이용자에게 연주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배우는 모습이 나타나고, 다른 이용자가 경험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은 이용자가 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티티섬에 찾아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곁눈질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도 하고, 우연히 영감을 받기도 한다. 예컨대, 여름방학 때마다 티티섬에 방문하는 벨라루스에서 온 이용자 가족들과 어렵게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기도 한다.

티티섬을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라 느끼기 시작하면서 취향이나 공통된 욕구를 바탕으로 연령과 상관없이 느슨하게 교류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기차를 좋아하는 14살, 19살 이용자가 티티섬에서 만나 기차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정보를 교환한다든가, 10살 이용자와 18살 이용자가 만나 틱톡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메이킹 공간인 티티랩에서 의기투합한 이용자들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담해서 한 대의 고카트를 몇 주에 걸쳐 완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티티섬은 자연스럽게 취향과 관심 중심의 활동이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일상 커뮤니티 도서관이 되어가고 있다.

한 이용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 (잘못된 정보(티티섬은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가 담겨있지만, 이 게시물로 이용자가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티티섬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출처: 조은정)

그림 5. 한 이용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 (잘못된 정보(티티섬은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가 담겨있지만, 이 게시물로 이용자가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티티섬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출처: 조은정)

지금 티티섬은

현재 일평균 170명 정도의 청소년 이용자가 티티섬을 방문한다. 오픈런을 하여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오는 이용자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이용자가 많이 몰리는 날은 만원 표시등이 켜진 엘리베이터가 쉬지 않고 몇 번씩 이용자를 실어 나른다. 최근에는 특히 17~19세의 신규 가입자가 많았는데, 이들의 90%가 입소문으로 방문했고, 이들 중 62%가 같은 달에 다시 티티섬을 방문했다.

물론, 이런 정량적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티티섬이 더욱 의미 있게 들여다보려고 하는 자료는 이용자의 변화하는 모습이 담긴 관찰 데이터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이용자가 도서관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도서관의 인프라(공간, 사람, 콘텐츠)를 활용해 시도하는 모습, 실패가 두려워 ‘하고 싶다’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했던 이용자가 스스로 필요한 자료를 찾아 시도하는 모습, 도움이 필요할 때 운영자에게 혹은 다른 이용자에게 먼저 다가가 부탁하는 모습 등이 그 예이다.

개관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청소년에게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그 경험을 도서관에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정답 없는 길을 오늘도 뚜벅뚜벅 고민하며 걸어가고 있다.



1) 도서관법 제1장 제3조

담당부서 : 국제교류홍보팀 (02-590-0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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