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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Pompeii]
KSH2002016683
용어범주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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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설명이탈리아 고대도시. 캄파니아주 북서부 나폴리만 남서쪽 23㎞ 베수비오산 남쪽 기슭에 있었다. 〔역사〕 교통의 요충,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일찍이 오스크인이 촌락을 이룬 뒤, BC 8세기 이후 그리스의 식민자 에트루리아인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확대되었다. 지금은 내륙(內陸)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江)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帝政)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人)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人)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 그동안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시(植民市)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혀지고 있다. 그후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 BC 91∼BC 88) 때에는 동맹시 쪽에 가담하였으므로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의 공격에 굴복,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 급격히 로마화(化)하였다.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인구의 계절적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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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유형
ITA(1)
상위어(2) 관련어(2)
관계 동의어 · 유사어 · 외국어
동의어 · 유사어 · 외국어
관계 ITA(ITA)
제목 Pompeii
관계 관계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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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번호 제목 저자 발행년도 발행처
창작물
번호 1
저자 메리 비어드 지음 ;강혜정 옮김
발행년도 2016
발행처 글항아리
번호 2
저자 사진 및 원고: SAPES
발행년도 2014 (2015 2쇄)
발행처 국립중앙박물관 : 시월
번호 3
저자 김문환 지음
발행년도 2004
발행처 다인미디어
담당부서 : 국가서지과 (02-590-6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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