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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沖繩戰鬪]
KSH2004020859
용어범주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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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설명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3월 말부터 6월 23일까지 일본 류큐제도[琉球諸島]의 오키나와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이다. 개전 후 처음으로 일본 영토 내에서 벌어진 전면전으로, 그 무렵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수비하는 일본 제32군은 총 병력 10만 명 이상으로, 주력은 육군 제24사단과 제62사단, 독립혼성44여단 등 약 3만 4000명이었다. 군사령관은 우시지마 미쓰루[島滿] 중장, 참모장은 죠 이사무[長勇] 소장이었다. 이에 대하여 미군은 상륙부대의 주력으로 사이몬 버크너 육군중장이 지휘하는 신설 제10군 예하 제3해병군단과 육군 제24군단 등 5개 사단 8만 5000명을 투입하였다. 4월 1일 오전, 미군은 주력 4개 사단 병력으로 가데나만(灣)에 상륙하여 순조롭게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미군은 섬의 지협을 돌파하여 일본군을 남북으로 분리·차단하였으나, 일본군이 광대한 북부 지역을 포기하면서 방어선을 축소하고 험준한 남쪽 기슭의 산악지역으로 미군을 유인하여 최대한의 지연전을 전개한다는 전략으로 맞서 나갔다. 4월 5일부터는 일본군 사령부 슈리[首里]를 중심으로 한 무수한 동굴 진지가 미군의 큰 피해를 강요하여 공격이 한때 답보상태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강한 화력에 힘입은 미군은 일본군의 총반격을 격퇴하고, 5월 29일 슈리를 함락하였다. 5월 31일, 일본군은 이미 전력의 85%를 잃었고 사령부는 섬 남단 마부니[摩文仁] 고지의 동굴로 퇴각하여 옥쇄(玉碎)의 준비에 들어갔다. 6월 11일에는 오로꾸[小祿] 지구에서 지상전을 벌이던 일본의 해군이 오오타 미노루[大田實] 사령관 이하 전원이 옥쇄하였다. 일본군의 잔존 병력 6,000여 명은 미군의 강력한 보포(步包) 협격에 버티지 못하고 6월 15일에 이르러 완전히 붕괴하였다. 6월 19일 사령부 참모가 전원 출격하여 전사하였고, 6월 23일 오후 4시 30분에 우시지마 사령관 및 죠 참모장이 할복 자결함으로써 전투가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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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유형
영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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