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의 시대, 사서로 산다는 것
  • 작성부서 국제교류홍보팀
  • 등록일 2017-02-13
  • 조회 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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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사람들의 시간과 가치를 생각하다

십수 년 전이니 이미 사라졌으리라. 당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언니를 따라간 도서관 앞 백반집은 한 달에 얼마간을 내면 그날그날 다른 메뉴가 제공되었다. 도심 한복판만큼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그 동네의 백반집은, 꽤 맛 좋았던 ‘밥’뿐만 아니라 수험생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꾸기 힘든 ‘시간’과 ‘가치’를 함께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하고 선택하는 데 소모되는 ‘시간’.

추천 도서 단 세 권만을 가져다 놓는 무인 서점이 있다. ‘요즘 대형 서점도 힘든데, 그게 되겠어?’ 싶었는데 역시나 핵심 사업은 따로 있다. 바로 페이스북을 통한 '카드 콘텐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줄 글귀를 이미지와 조합하여 카드를 만들고 그 끝에 책을 소개하는 식이다. 즐겨보는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인 「열정에 기름 붓기」 이야기다.

다른 서비스도 재미있다.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월별로 기록해두면 매월 말 정성스럽게 포장된 책 한 권이 집으로 배송된다. 함께 배송되는 간식이나 같이 들으면 좋을 음악 리스트, 손편지 등은 덤이다. 책 추천 서비스 「플라이북」의 이야기다.

출판업계가 어려워져 연초부터 대표 서적 도매상의 어려움이 전해진 때에 ‘책’을 아이템으로 하는 이런 서비스들이 생겨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들의 경쟁력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선택의 폭을 줄이는 ‘선별’에 있지 않나 싶다. 이런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가 바로 ‘큐레이션’이다. 고객의 ‘선택’을 도와 ‘시간’을 벌어주는 일.


사람과 도서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다

물론 도서관에서도 이러한 서비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을 예로 들면, 최근 두 달 내에 들어온 책은 도서관 1층에 따로 배치하고, 로비 중앙에는 「Special collec¬tion: 책 읽는 DGIST」라는 이름으로 매달 테마를 정해 30권 정도의 책을 전시한다. 이용자들이 검색 등을 통해 원하는 자료만 알아서 찾아가도록 마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발견’의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아이템인 ‘책’이라는 콘텐츠로 만든 ‘큐레이션’이다. 이러한 서비스 운영 결과, 구성원과 자료 수가 늘어난 덕도 있겠지만 지난해 5층에 있던 책 일부를 1층으로 이동한 것만으로도 자료 대출량이 전년 대비 32% 늘었다.

DGIST도서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정된 책을 도서관 곳곳의 미디어 장비와 웹에서도 동시에 전시한다. 특히 홈페이지에는 「D-큐레이션」이라는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을 통해 북 트레일러 영상이나 언론사의 서평 등을 모아 이용자들이 원하는 책을 선택하도록 돕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책을 서로 ‘연결’한다.

이렇게 큐레이션한 콘텐츠는 도서관 홈페이지뿐 아니라 구성원들이 자주 접속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도 노출될 수 있도록 기술적 조치를 해둔다. 도서관을 찾지 않는 ‘잠재적 이용자’를 도서관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DGIST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서관이 소장한 책과 저널을 더 많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데, 왜 다시 큐레이션인가

DGIST도서관은 개관 전부터 기획한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를 3년째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가 도서관 최초로 탄생한 데에는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 특성상 ‘책을 찾지 않는 이용자’들이 도서관에서 멀어지는 속도도 그만큼 빨랐기 때문에 학생과 연구자들이 정보에 어떻게 접근하고 그것을 구하는지, 어디에서 재미를 찾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 DGIST도서관이 했던 고민과 그 해결 방안을 소개한다.

변화한 이용자의 특성과 요구를 파악하고 받아들이자. 이미 이용자들은 적어도 성인이 되어 디지털 기술을 접하게 된 부모 세대인 ‘디지털 이주자(Digital Immigrant)’이거나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만난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10~20대인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이들에게 아무리 “훌륭한 리더는 모두 독서광이었고, 건강을 생각한다면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쥐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쉽게 가 닿을 리 없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 연구자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알리고, 도서관 ‘원문복사’ 서비스의 도움이 없더라도 과학자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의 플랫폼인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를 통해 전 세계의 연구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료를 주고 받는다. 그러니까 모두 읽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어느 때보다 많이 읽고 보는 것이다.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디바이스에서.

책의 경계를 허물고 제품 유형을 확장하자. 책에서 구했던 정보, 경험, 가치와 재미들이 책 너머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콘텐츠를 담은 그릇이 종이책인가, 전자책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처럼 집적된 형태로의 콘텐츠도 있지만, 변화한 이용자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디바이스를 통해 빠른 호흡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잘게 쪼개진 콘텐츠와 이미지, 동영상 등의 미디어를 선호한다.

블로거의 진심과 정성이 담긴 하나의 포스트가, 짤막한 카드 콘텐츠나 잘 편집된 한 편의 동영상이, ‘좋아요’를 많이 얻은 댓글 하나가 때로는 책 한 권보다 배부를 수 있고,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최근 이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책을 보면 웹툰을 엮어 만들었거나 트위터나 블로그, 팟캐스트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검증된 콘텐츠 조각을 엮어 단행본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음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 조금 더 적극적인 중개자가 되자

그래서 DGIST도서관은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구매한 책과 저널은 물론이고 개방형 콘텐츠인 오픈 액세스(Open Access)와 소셜 미디어까지 정보의 경계를 넓히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이미 누군가가 만든 뉴스, 블로그 동영상 등의 소셜 미디어 콘텐츠까지 한데 모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지난밤 정해진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각종 뉴스와 함께 도서관에서 구독 중인 관련 논문, 유튜브 실험 영상, 수상자 연구실 홈페이지와 해당 분야의 관련 연구자까지 링크하여 ‘노벨생리의학상 OOO 수상, 그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여 보여 준다면 이용자들은 이 모든 자료를 스스로 검색해보는 수고를 더는 것이다.

새로운 일이 아니다. 변화한 이용자와 콘텐츠 사이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중개자가 되는 거다. 도서관과 사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던가. 새로운 시도인 듯 하지만 새롭지 않다. 배워야 하는 일 같지만 우리가 가장 잘했던 일이다. 사서 본연의 역할이다.

책과 마찬가지로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를 검토하고, 선택하고, 모으고, 목록하고, 분류하고, 전달한다. 물리적인 장서와 웹의 장서를 서로 연결하고 정보와 이용자를 연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각 기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국가와 국제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늘 염두에 두고 그와 관련해 전달할 정보는 없는지 늘 궁리한다. 검색 엔진을 통해 우리가 모아 둔 콘텐츠가 검색되고 읽히고 공유되는 동안 더불어 이용자의 경계도 넓혀 간다.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도 많다.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에는 늘 저작권 관련 이슈가 함께 따라다니고, 특정 분야에 있어 사서보다 훨씬 잘 아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인공 지능과 겨루어 더 빠르고 정교하게 이용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저 가만히 앉아 빼앗길 수는 없기에 DGIST도서관의 실험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용자와 콘텐츠가 그러하듯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이다(The Library is a Growing Organism)’ 도서관인이 사랑하는 진리, 링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은 어느 세대에도 통용된다.


글_ 김경아(대구경북과학기술원 도서관운영팀장)
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2006년 졸업식 다음 날 POSTECH에 입사하여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외치고 다니다 2013년 신생대학 DGIST의 교육철학과 비전에 매료되어 이적, ‘젊어서 고생은 사서가 한다’며 도서관 개관(2014)에 힘을 보탠다.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인 ‘D-큐레이션’을 기획•운영, 현재 또 다른 큐레이션 서비스인 기관 리포지터리(DGIST Scholar)를 준비 중이다.



담당부서 : 국제교류홍보팀 (02-590-07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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